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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반의 말씀 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여러 방면으로 제자들에게 당산을
증명해 보이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바로 나다."(루카 24, 39)
엠마오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는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온 두
제자가 동료 제자들과 모여 부활 체험을 나눌 때, 바로 그 현장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껏 나눈 이야기가
무색하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루카 24,37)하지요.
"나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집히시던 날 밤, 위엄에 찬 목소리를 기억합
니다. 또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하셨던 하느님의
자기 소개 또한 알고 있지요.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나다"하고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나를 만져 보아라."(루카 24, 39)
급기야 예수님은 당신을 만지라고 하십니다. 육화하신 하느님,
인성을 지니신 성자께서 공생활 기간 동안 제자들과 실제로 몸
을 부딧히며 사셨지요. 부활하신 그분이 살과 뼈를 지니신 존재
임을 제자들이 직접 감지하도록 허용하십니다.
사람뿐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게 만진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만짐을 통해 아기는 엄마를 느끼고, 아
픈 배도 낫고, 움츠러든 어깨도 펴집니다. 서로 신뢰하고 사랑
하는 이들 간의 터치는 존중과 사랑, 치유와 위로, 지지와 격려
의 소통이고 확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루카 24, 43)
먹는 것 또한 생명 있는 모든 존재의 보편적 행위입니다. 섭취함
으로써 생명을 이어갈 힘을 얻고,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관계
를 형성하지요.
인간의 육적 한계를 뛰어넘어 부활하신 분이 뭐가 아쉬워 먹을
것을 찾으셨겠습니까! 그분은 당신을 먹으라고 내어주시기까지
하신 분이니 먹는 행위에 그만큼 큰 의미를 담고 계실 것 같습
니다. 또 어쩌면 예수님은 생전에 제자들과 가장 빈번히 하셨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으신 것이 아닐까 십기도 하네요.
이렇듯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다"라는 익숙한 계시로, 뼈와
살을 지닌 존재임을 만져 확인하라는 허용으로, 직접 그들 앞
에서 음식을 잡수심으로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하던 스승 예
수다"라고 역설하고 계신 겁니다.
제1독서에서는 어제에 이어 불구자였다가 치유받은 이가 등
장합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사도 3, 16)
기적에 경탄하는 백성들 앞에서 베드로는 겸허히 밝힙니다.
이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된 것은 그분 이름에 대한 "믿음"이
었다고 말입니다. 기적은 자기들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믿음
에서 나온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제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믿음
입니다. 사실 성경 안에는 믿지 못하는 무수한 이유들이 등장
합니다. 기쁜 나머지 믿지 못하고, 두려워서 믿지 못하고, 출
신 때문에 믿지 못하고, 출신 때문에 믿지 못하고, 율법에 어긋
난다고 믿지못합니다. 믿음은 퍽 단순단 결단이라 믿는 데에는
구구하게 이유를 붙일 필요가 없는데, 믿지 못하는 데는 이처
럼 이유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
다."(루카 24,45)
부활하신 분의 존재는 그분의 수난과 죽음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의 완수임을 깨달을 때 진실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제다들의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이로써 재자들은 한 발
한 발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갑니다.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예수님께서 하나씩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시고, 만지게 하시고, 먹고 마시며 함
께 살아가십니다. 그러니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
부활하신 주님을 찾읍시다. 그분은 멀리 계시지 않고, 성화
나 조각상에 고정되어 계시지도 않습니다. 우리 곁에서 웃고
우는 이들, 성내고 환호하는이들, 우리를 자극하고 성장시키
는 모든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만납시다. 이것이 "지금 여
기"를 사는 우리에게 열어놓으신 부활의 의미입니다.
오늘 특별히 6년 전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된 소중한 이들을 기
억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으
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들을 기리며, 지금 온 인류가 겪는 비
극과 함께 우리 기도에 맡겨진 영혼들도 잊지 않겠습니다.
한계를 지닌 우리 작고 보잘것없는 인간에게 부활은 그래서
희망입니다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두레박 신부님 영적일기가 올라오지 않아서 바오로 신부님의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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