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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반의 말씀 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생명을 이야기 합니다.
"그 가운데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마르 5,25)
하혈은 이스라엘에서 부정한 현상입니단. 게다가 열둘은 완전한 숫
자이니, 그녀는 이 병과 함께 공동체에서 움츠러들며 소외로 지쳐갔
을 것입니다. 그녀로선 밀쳐대는 군중 가운데 섞여 있다는 자체가 큰
모험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입니다.
"저분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마르 5,28)
그런 그녀가 감히 이스라엘의 남성 예언자에게 손을 대려고 다가갑
니다. 열두 해 동안 아프면서 그 세월만큼 내내 치료에 실패해온 터
라 이미 육신은 물론 정신도 영혼도 피폐해졌을 터인데, 직관이 현실
적 두려움을 누르고 믿음을 부추긴 것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
어나 건강해져라."(마르 5,34) 예수님은 그녀를 치유해 주심으로써
삶의 의욕과 더불어 미래의 생명까지 북돋아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36)
먼저 예수님을 찾아왔던 회당장은 잠시 지체하는 사이 딸의 생명을 황
망히 놓쳐 버립니다. 목숨처럼 아끼는 딸을 잃은 회당장 자신도 죽음음
체험한 것과 진배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가
방금 두 눈으로 본, 앓던 여자의 믿음의 기적을 그도 지금 당장 요구받
고 있는 것입니다.
"수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마르 5,41)
이번에는 예수님이 열두 살 소녀를 죽음에서 일으키십니다. 이 기적에
딸의 죽음 앞에서 심장이 무너나고 존재가 부서지는 고통을 믿음 한 조
각 부여잡고 견딘 회당장의 공로도 한몫했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앞서 치유받은 여인의 투병 기간과 같은, 완전한 숫자 열
둘입니다. 그네들의 생명은 오늘의 이 놀라운 기적을 위해 준비된 것이
었을까요? 수녀는 살아온 세월에, 아버비 믿음과 예수님의 손길이 더해
져 더 싱싱하고 푸르른 생명을 선사받았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한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이야기
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
아!"(2사무 19,1) 자신에게 칼을 겨누었어도 다윗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입니다.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울부짖는 다윗의
탄식과 눈물은 죄악과 유혹, 시련 앞에서 시들시들 생명을 잃어가는
우리를 향해 애태우는 하느님의 절규를 닮았습니다.
비록 압살롬은 죽었지만, 그의 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애도하는 아버
지의 눈물과 사랑을 통해 생명이 복권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압살몸은
더이상 반역자가 아니라 다윗의 사랑 받는 아들로 각인되겠지요.
오늘 등장인물들이 체험한 생명, 선사받은 새 생명은 모두 혹독한 죽
음의 관문을 통과한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생명은 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은 나의 죽음이든 타인의 죽음이든 소멸을 등에 업고 희생을 거
름 삼아 싹을 틔우고 열매 맺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 짊어지셨네."(복음
환소홍) 믿는 우리가 누리게 된 생명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목숨 값입
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영육을 병고와 죄악의 질병
을 당신 것으로 취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생명이 소중하고 귀하고
찬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안히 가거라."
"건강해져라."
" 믿기만 하여라."
"일어나라!"
사랑하는 벗님, 생명을 북돋아 주시는 이 말씀들을 품고 되뇌이면서
더욱 찬연히 빛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바로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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